펜션이 아늑하고 좋았습니다.
다녀와보세요 ㅎㅎ
“우와…….”
하연은 평소에 즐겨 읽던 스타토토사이트 매거진을 넘기다 말고 멍하니 굳었다. 잡지에 실린 화보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탓이었다.
연예인을 보고도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화보 속의 남자는 그녀의 이상형을 완벽하게 재연해 놓은 듯한 외모여서 시선을 떼려야 뗄 수 없었다.
그렇게 멍하게 홀린 듯이 잡지를 보고 있으니 옆에 있던 유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무슨 놀랄만한 기사라도 났어?”
미술계에 파격적인 이슈가 터졌다고 생각하며 하연이 롤토토사이트 페이지를 흘끗 본 유진이 쯧, 혀를 찼다.
“난 또 뭐라고. 뭐야? 반한 거야?”
유진이 하연의 눈앞에 손을 휘휘 흔들며 놀리듯이 말했다.
평소 이성에게 관심을 표하는 일이 없던 하연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놀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바, 반하기는. 근데…… 진짜 잘생기지 않았니?”
그녀의 눈이 화보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 잘생기긴 잘생겼네.”
유진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복잡해진 속내를 숨겼다. 그녀가 넋을 잃고 보는 화보의 남자는 잘생겼으나 예리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으니까.
‘네 취향이 설마 나쁜 남자일 줄이야.’
유진은 하연의 이상형이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살짝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 하연은 강민제 관장에게 입덕한 신실한 덕후가 되었다. 이때만 해도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팬심같은 것이어서 그의 기사를 발견한 것만 해도 기쁘고, 그가 주최하는 전시회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만족감이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하다 정말.”
잠깐으로 그칠 줄 알았던 하연의 덕질이 오래도록 계속되자 유진이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리암 미술관에서 새로운 전시회를 개최할 때마다 방문하는 정성이라니. 게다가 리암 미술관은 경기도 인근에 위치해 있어서 그곳을 오가려면 롤베팅 다 투자해야 했다.
“그러게 나 혼자와도 된다니까.”
하연이 민망했던지 눈도 못 마주치고 중얼거렸다.
유진은 하연과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에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너 혼자 보냈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이 언니는 그런 꼴 못 본다.”
유진의 너스레에 하연이 풋,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서 미술관을 돌아보고 있을 때였다.
“저기, 저기 좀 봐!”
미술관 안이라서 큰 소리를 내지 못한 하연이 목소리를 누른 채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아, 강민제 관장이네?”
유진은 실물로 본 강민제 관장이 신기해서 일순 멍해졌다.
“사진 찍어야지.”
왠지 신나 보이는 얼굴을 한 하연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롤배팅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좋냐?”
유진이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하연을 보고 낮게 혀를 찼다. 그러고는 고민했다. 이쯤에서 덕질을 그만두게 말려야 하나 하고.
실물로 본 강민제의 얼굴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험악했다. 몸에 딱 맞게 재단된 슈트를 입고 한쪽으로 머리를 빗어넘긴 모습이 지나치게 잘생기긴 했으나 삐딱한 자세와 예리한 눈빛이 사나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당연히 좋지. 오늘은 운이 좋은가 봐. 사진까지 찍었으니.”
하연의 말간 얼굴을 본 유진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타베팅 얼굴이 그녀에게 행복을 준다는데 어떻게 말리겠나.
같은 얼굴을 보고 서로 다른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개인 취향이 다르다는 게 실감났다.
***
하연은 민제를 볼 때마다 이 남자가 내 남자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잠시 멍해질 때가 있었다.
“난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내가 이렇게 생긴 것에 대해 감사해.”
민제가 픽 웃으며 한 말에 하연은 정신을 차렸다.
내가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었다고 저런 말을 할까. 그녀는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 표정이 어땠길래요?”
“필터링 없이 말해도 되나?”
그가 고민스럽다는 듯이 턱을 문질렀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건만 괜스레 열감이 훅 끼치는 기분이 들어 하연은 손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아뇨, 하지 마세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어느덧 하연에게로 바짝 다가온 민제가 눈매가 휘어지도록 아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그런 표정으로 날 보면 출근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다시 침대에서 뒹……!”
으악! 하연이 기함하며 두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롤드컵토토 손에 입이 막힌 민제가 이제는 아예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유혹이 짙은 눈빛을 보내왔다.
“으, 못들은 걸로 할래요. 그러니까 얼른 출근하세요.”
하연은 애써 그의 눈빛을 모른척하며 그의 입을 가렸던 손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민제가 오히려 그녀의 손목을 잡아 손을 떼지 못하게 한 뒤, 그녀의 손바닥에 제 입술을 꾹 눌렀다.
그 말캉하면서도 뜨거운 느낌에 하연이 움찔했다. 그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가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뭐, 뭐예요?”
하연이 놀라며 두 손을 제 등 뒤로 감췄다. 그 모습을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본 민제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나 지금, 유혹하는 건데. 그래도 안 되나?”
하연은 살짝 정신이 혼미해져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하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안 돼요. 관장이 더 열심히 일해야죠. 그래야 직원들이 본받지.”
그녀는 지각하는 게 아주 대역죄를 저지른 것처럼 과장해서 말하며 민제의 등을 꾹꾹 밀었다. 그래봤자 그를 한 걸음도 움직이게 하진 못했지만.
하연이 낑낑거리는 걸 바라보다 결국 웃음을 터트린 민제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타협안을 제시해 봐.”
응? 내가 그런 걸 왜 제시해야 하지? 하연이 잠깐 멍해지는 것을 본 민제가 웃음을 삼키며 이어 말했다.
“키스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도대체 뭘 어쩌다가 그를 출근시키기 위해 키스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 걸까. 하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생각하다가 계속 실랑이를 하느니 키스를 하자 싶었다.
“조, 좋아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허리를 훅 감아 당기며 입술을 베어 물었다.
온몸이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아찔한 키스였다. 뜨거운 숨결이 얽히고 말캉한 살결이 마구 뒤섞였다. 저릿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그렇게 입안 곳곳을 누비던 그가 한참 만에 하연을 놓아 주었다.
하아, 막힌 숨을 내뱉는 그녀의 눈동자가 쾌감에 잠식된 것을 롤토토 민제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넌지시 물었다.
“생각이 바뀌진 않았어?”
지금 당장 그를 침대로 끌고 가고 싶어진 하연이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야릇한 상상을 몰아내려는 듯이 크흠, 헛기침을 뱉어낸 하연이 애써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생각이 바뀌고 안 바뀌고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방에서 안 나오면 지후가 계속 기다릴 거라고요.”
“아……!”
민제가 오늘 아침에 지후를 데려다주기로 한 걸 까맣게 잊은 모양인지 짧게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그녀의 말뜻을 곱씹고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어쨌든 그녀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하긴 했으니까.
촉,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나서야 그가 느릿하게 발걸음을 떨어뜨렸다.
“아쉽네.”
중얼거리는 그의 말을 들은 하연은 갑자기 더운 느낌이 들어 어색하게 웃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매번 그의 유혹에 넘어가 아예 방 밖으로 나가기 싫어질 것이 분명했다.
***
자신이 생일 선물로 준 넥타이를 민제가 거의 매일 하고 다녔기 때문에 보다 못한 하연은 백화점에 왔다.
옷장에 비싼 명품 넥타이를 가득 스타토토 두고도 주야장천 제가 선물한 것만 매고 다니니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엔 붉은색 계열로 할까?’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서 그런지 백화점 곳곳에 붉은색이 들어간 물건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머,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그게 이번 시즌에 가장 잘 나가는 상품이에요.”
직원의 말에 자신감을 얻은 하연은 톤 다운된 점잖은 붉은색 넥타이를 골랐다.
“이걸로 주세요.”
민제의 선물만 사기 뭣해서 그녀는 지후의 홀덤사이트 비롯해 미란과 준원에게 줄 선물까지 골랐다.
‘산타가 된 것 같네.’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돌아오려니 마치 산타가 된 것 같아 온라인홀덤 좋았다.
저녁을 먹고 난 뒤, 거실에 모인 이들을 둘러본 하연은 아까 백화점에서 산 선물을 꺼냈다.
“이거 별거 아니지만, 제 마음이에요.”
“어머, 뭘 또 이런 걸 다 샀어?”
미란이 반색하며 선물을 받아들었다.
“이건 김 기사님 거예요.”
“제 것도 있습니까?”
하연이 건네는 선물을 받은 준원이 입꼬리를 늘렸다.
“그리고 이건 지후 거.”
“감사합니다!”
지후가 눈을 반짝이며 선물을 받아갔다. 홀덤사이트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선물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이건 관장님 거예요.”
하연이 마지막으로 민제에게 선물을 건넸다.
“고마워. 그런데…… 무슨, 날인가?”
어째서 모두에게 선물을 주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민제가 물었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 다들 한차례 어깨를 움찔거렸다.
매년 돌아오는 크리스마스였지만 올해처럼 거실에 트리를 설치하고 꾸민 적은 없었다. 아니, 하연이 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렇게 거실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크리스마스잖아요. 그냥, 고마운 마음을 선물로 표현하는 거예요.”
“흠…….”
다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민제가 턱을 매만졌다. 어쩐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참는 것 같기도 했다.
하연은 그가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뱉기 전에 서둘러 선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얼른 열어 봐요.”
재촉하는 그녀가 귀여웠는지 민제가 곧바로 표정을 풀고 온라인홀덤 끄덕였다.
달칵, 상자를 열자 하연이 고심해서 고른 붉은색 넥타이가 나타났다. 그의 입매가 잠시 씰룩거렸다.
“마음에 들어요?”
하연이 살짝 긴장한 상태로 묻자 민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마음에 들지. 누가 골라준 건데.”
다행이다. 하연이 어깨가 내려가도록 막힌 숨을 내뱉는데 그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침에 직접 매 줄 건가?”
일전에 넥타이를 선물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린 하연이 저도 모르게 뺨을 붉혔다.
그에게 넥타이를 매어 주다가 눈이 맞아서 키스를 했고, 결국 그는 지각까지 했었다.
넥타이를 매어 달라는 말 한마디에 야한 상상이 끝을 모르고 펼쳐지자 하연이 당황해서 서둘러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 물론이죠.”
가죽 장갑을 받은 준원이 자랑하며 껄껄거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던 민제의 표정이 그제야 풀어졌다.
홍조를 띤 그녀의 뺨을 진득하게 바라보던 민제가 낮게 중얼거렸다.
“뭐, 크리스마스도 나름 괜찮네.”
함께 할 가족이 없었기에 의도적으로 떠들썩한 크리스마스를 회피하게 된 민제가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꺼워하며 웃었다.
해사하게 접힌 그의 눈매를 보던 하연은 아까보다 더 심한 열감에 휩싸인 채 몸을 떨었다.
정말로 불순한 생각 하나 없이 선물을 골랐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뭐,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나. 그가 기뻐하면 그만인 것을.
“메리 크리스마스.”
하연은 일부러 더 말갛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러자 갑자기 묘하게 눈빛이 가라앉은 민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아침엔 바쁘니까 미리 타이에 어울리는 셔츠를 골라놔야겠어.”
따라오라고 눈짓하는 걸 보니 자신이 셔츠 고르는 걸 도와줘야 하나 보다.
“크흠, 그렇군요.”
미리 셔츠를 골라놔야 한다니 별수 없지. 하연은 그를 따라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